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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실황

당일이 되면 관중들이 동ㆍ서부로 나누어 모여들기 시작해 만장을 이룬다. 오후 1시쯤 되면 양동채가 멀리 보이기 시작하면 수많은 장정들이 일시에 환호성을 치며 자기 편 동채로 달려가 진용을 정비하고 임전태세를 갖춘다. 전진 중의 함성시위와 충전하는 의기는 능히 적을 위축케 한다.

양 편의 전진/진격하는 모습

앙편이 3백m 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보게 되면 적의 허점을 노리는 듯 좌회전, 우회전으로 호시탐탐 적응 응시하며 신중하게 한걸음씩 다가간다. 양군들이 가까이 서게 되면 양동채꾼들의 불꽃 튀기는 시위 싸움이 시작되고 관중들은 몇 시간 아슬아슬하게 간담을 조이게 된다.

이 도중에 적의 약점을 서로 파악하게 되고 양편 수뇌부에서 시간을 정하면 주대장이 입장하여 동채에 올라와서 위풍당당하게 사방을 두루 살펴보고 신호와 구호를 외치며 진격한다. 이 때 인산인해를 이룬 관객이 또 열광적인 모습으로 흥분돼 동(서)부야! 밀어라! 라고 응원한다.

이 때 관중들은 자기 우군이 밀리면 달려 들어가 가세하며, 싸움은 더욱 격화되나 아무리 격돌하여도 적군을 해치거나 완력을 쓰지 않고 신사적으로 싸움을 한다.

짚신 던지는 모습어느 한 쪽편이 적의 동채를 점령하여 동채가 땅에 닿게 되면 동채 방석과 결박줄을 뜯어서 하늘 높이 던져 승리의 신호는 한다. 이긴 편은 함성과 함께 짚신을 하늘이 까맣게 던지며 월사! 덜사! 하며 환호성을 올리며 승전을 흥겨워하며 밤늦도록 시내 거리를 누비며 놀기도 한다. 패자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슬금슬금 사라진다.

그런데 1922년 일본인들이 주동이 되어 관공서를 양분하여 동ㆍ서부로 가담시키고 지금 안동역 터에서 놀이를 했다. 이 때 상대편에 돌을 던져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자 일본인들이 이 전통놀이가 국민들의 화합과 단결 협동심을 양성시키는 계기가 된다며 이 놀이를 중단시켰다.

이에 향토민들은 크게 분노하고 매년 재연을 요구하였으나 불허하다가 그 후 14년 후인 1936년 음력 2월말 경북선 철도 개통식을 계기로 관의 허가를 얻어 서악사 앞 광장에서 한편에 5백명으로 인원을 제한해 싸움을 벌렸다.

그러나 서로가 많은 주민들이 가세하면서 한쪽이 수천여명에 이르게 되자 동채와 대장이 입장하기도 전에 머리꾼 싸움이 벌어져서 한 사람이 넘어지면서 그 위에 수십명이 덮쳐서 5~6명의 부상자를 내어 동채 싸움이 중단되는 소동을 빚었다.

싸움의 요령
  1. 대장은 적의 주력이 집중하는 곳을 파악코자 한다.
  2. 대장은 동채꾼의 신변보호에 유념한다.
  3. 회전은 아군의 머리꾼이 많은 쪽으로 한다.
  4. 동채는 항상 대각선을 유지한다.
  5. 동채와 동채사이는 언제나 머리꾼으로 포화상태에 있어야 한다.
  6. 동채꾼은 동채와 생사를 같이 하고 이탈해서는 안된다.
  7. 동채는 항상 머리꾼 뒤를 따라야 한다.
  8. 머리꾼은 동채에 신경을 쓰지 말고 흩어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한다.
  9. 머리꾼은 적의 머리꾼을 전력으로 밀어 헤쳐 들어간다.
  10. 아군 머리꾼에 균열이 생기면 신속히 회전 후퇴하여 적이 날카롭게 공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11. 머리꾼은 동채가 후퇴할 때는 더욱 사력을 다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한다.
  12. 동채와 앞채꾼이 후퇴하여 공간이 생기면 즉각 흩어진 머리꾼과 앞놀이 꾼이 돌입하여 진용을 정비한다.
  13. 적이 회전 후퇴를 계획하면 잠시 여유도 주지 않고 반대편으로 회전하며 맹추격 한다.
  14. 뒤채꾼과 뒤놀이꾼은 대장 신호를 구호로 전군에 급속히 알린다.
  15. 동채머리는 전진시는 높이고 후퇴시는 낮춘다.
승부의 결정
  1. 동채가 땅에 닿거나 동채가 찢어져 못쓰게 되던가 빼앗겼을 때는 결정패가 된다.
  2. 경기 중에 항상 수세로 밀리어 궁지에 빠진 편이 판정패가 된다.
  3. 규칙위반 기타 비도덕적 행위로 주의를 받고 경기를 중단시키게 한편을 벌칙패로 규정한다.

동채가 땅에 떨어진 모습